일반적으로 무로마치시대라고 하면, 아시카가씨가 교토의 무로마치에 막부를 두고 정권을 유지한 기간(1336-1573)을 말한다. 그러나 1333년에 가마쿠라 막부가 멸망한 후, 나라 요시노의 고다이고 천황 및 구스노키 마사시게를 중심으로 한 남조(다이카쿠지토)와 교토의 아시카가 다카우지를 중심으로 한 북조(지묘인토)로 분열되어 각자 다른 천황을 세워 대립한다. 이 기간(1336-1392)을 남북조시대라 하고, 무로마치 막부의 권력 투쟁에 의해 일어난 오닌의 난(1476) 이후 약 100년간 막부의 무력화로 인해 전국의 다이묘들 간에 격렬한 군사적 대립이 있었던 기간을 전국戰國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1. 회화
무로마치시대에 무가 정권을 계승한 아시카가씨는 무가의 문화보다는 귀족의 풍아豊雅한 생활을 희구하였다. 실정으로 인해 전국시대라는 난세를 초래하였지만 회화에서는 근세적인 일본 미술의 탄생을 가져왔다. 이 시기의 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은 바로 선종이었다. 선종의 가르침은 무가의 정신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그 비호 아래 급속도로 유포되어 정치나 문화, 특히 예술 방면에도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가마쿠라시대부터 그려왔던 수묵화를 중심으로 하는 한화(송·원화풍)는 14세기에 이르러 가오, 모쿠안 레엔, 무도 슈이 등 수묵화의 대표 작가들에 의해 주도되어 점차 본격적으로 성행하였다. 가오의 전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가마쿠라시대에 송·원화의 영향을 받아 불화에 새로운 양식을 개척한 다쿠마파의 화가 혹은 선승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가오의 작품은 현재 많은 작품이 남아 있으며 <죽작도>와 더불어 <한산도> <오조육조도> <출산석가도> 등이 대표작이다. 가오와 함께 모쿠안은 초기 수묵화의 대표 화가이며, 그들의 작품은 당시 선승의 여기적 묵희의 높은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에 비해 회불사계의 전문 화승으로서 수묵 또는 채색의 불화·도석화·정상 등을 자유로이 그린 화가로는 민초(明兆, 1352-1431), 료젠 등을 들 수 있다. 민초는 남북조부터 무로마치 초기에 걸쳐서 활약하였고, 도후쿠지 전사직에 있었기에 일반적으로 조전사라고 하였다. 그가 그린 불화는 이전의 불화에 수묵화 필법을 혼용하여 절충한 것이다. 또한 정상으로는 일본 최초의 국사이며 도후쿠지의 개산인 엔니 벤넨(1202-1280)을 그린 <쇼이쓰국사상>이 있으며, 그 외에도 <오백나한상오십폭> 등의 많은 작품을 남겼다. 료젠의 경우, <백의관음도>를 비롯해 최근에 발견된 <열반도> 등의 작품이 있다. 수묵장병화 또한 전시대 후반기의 동향을 이어받아 14세기부터 15세기에 걸쳐 전통적인 야마토에 장병화와 병용되는 형태로 다양하게 그려졌다. 그 중 슈분의 작품으로 전하는 <산수도병풍>은 연대적으로 슈분의 사후인 15세기 후반경의 작품으로 보고 있다. 무로마치시대에서 이름을 알렸던 최대의 화가로는 쇼코쿠지 출신의 화승인 셋슈(1420-1506)이다. 그는 빗추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지며, 어릴 적 당시 학문예술의 중심지인 쇼코쿠지로 들어가 슈분에게 그림을 배웠다고 한다. 이후 그는 교토를 벗어나 중국 명나라에서 이재 등과 같은 화원 화가와 대륙의 실경을 접한 후, 1469년 일본으로 귀국하여 송·원화풍을 재인식한 견고하고 구축성과 실재감이 풍부한 개성이 강한 산수화 양식을 만들어냈다. 그의 작풍이 잘 나타나는 것으로는 <추동산수도> <사계산수도권>등이 있다. 무로마치시대 후반부터 말기가 되면, 자립적인 지방 도시가 출현하게 되면서 지방 화단의 활발한 움직임이 나타나게 된다. 앞서 설명한 인물인 셋슈도 이에 해당한다. 셋슈의 지도 하에 있던 히타치 출신 화승인 셋손은 가마쿠라에서 중국적 기법을 습득한 것으로 추정되며, 동북 지역 출신으로 그 지역 풍토를 반영한 도석화와 산수화 등을 그렸다. 이처럼 중국적인 화풍이 성행한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야마토에의 정통이 궁정에도코로를 중심으로 유지되었다. 그 중에서도 도사 미쓰노부(?-1522년경)는 1469년에 궁정 소속 화가가 되어 막부의 어용화사 양쪽을 겸해서 활동하였다. 그는 전통적인 야마토에 기법에 중국적 선묘법을 더해 <기요미즈데라연기에마키>(1517) 등을 비롯한 불화와 초상화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을 제작하였고, 어용화파의 하나인 도사파의 권위 확립에 이바지하였다. 이후의 회화 제작은 무로마치 말기에 이르러 지금까지의 선승 화가에서 벗어나 전문 화가 그룹인 가노파로 옮겨지게 되었다. 교토에서는 소탄의 뒤를 이어, 가노파의 시조始祖 가노 마사노부(1434-1530)가 막부의 어용화사가 되었다. 이로써 일본의 감성과 이성을 기본으로 한 중국풍의 일본 그림이 성립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주무숙이나 포대 등의 중국적 화제의 수용과 그 화제 본래의 의의 및 표현 내용을 일본의 주정성에서 해석하고 제작하려는 경향이 드러나게 된다. 마사노부의 유작으로는 <주무숙애련도>가 있다.
2. 조각과 건축
무로마치 막부를 연 아시카가 다카우지는 선종 중에서도 임제종을 비호하여 1338년부터 전국 66개소에 전몰자의 명복과 평화 기원을 목적으로 한 안코쿠지를 건립하고 이생탑을 조영하였다. 이 시기에 건립된 안코쿠지는 전국에 많이 남아 있으나, 이생탑은 교토의 야사카탑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호간지 오층목탑(1440)만이 남아있다. 또한 교토와 가마쿠라의 오산을 정점으로 하는 선종 사원의 관영화와 중앙집권을 시행하여 오산관사 제도 하에 전국 각지에 선종 사원이 건립되었다. 이와 더불어 선림 문인들의 취향에 근거한 조형 활동이 각지에 번지면서 수묵화 등의 회화가 크게 발전한다. 그러나 조각의 경우, 고전부흥을 통해 발전을 거듭했던 가마쿠라시대에 비해 직업불사들에 의한 종래의 형식이 전래될 뿐 독자적인 새로운 양식은 탄생하지 않는다. 다만 불교가 중앙귀족뿐만 아니라 전국의 각 계층에 영향을 끼쳐 조형 활동이 활발해졌기 때문에 많은 유품들이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또한 불사들은 교토, 나라, 가마쿠라의 불소(불상 제작 공방)를 중심으로 활동을 계속했다. 다음으로 가마쿠라시대에 선종이 융성함과 더불어 선종 관계의 독특한 조각이 제작된 것도 이 시대의 특징 중 하나이다. 특히 조사나 개산의 초상인 정상 조각 등의 초상조각은 이 시대에도 뛰어난 작품이 많이 제작되어 저조하던 불상조각을 능가하였다. 고슌이 제작한 것으로 알려진 가나가와현 즈이센지 목조무소소세키좌상, 교토 신주안 목조잇큐소준좌상 등과 같은 초상조각은 전대부터 이어진 개성적인 사실 표현과 선종적인 인격 표현을 기조로 한 작품이다. 무로마치시대의 사원 건축을 살펴보면, 선종 양식이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고 절충 양식도 크게 앞서 나가는 양상을 띤다. 무로마치 막부의 비호를 받은 선종이 전국에 퍼지면서, 예리하게 올라간 추녀 끝의 모양새와 화려한 세부장식을 특징으로 하는 선종 양식의 건축도 전국 각지에 건립되었다. 기후현 에호지 개산당, 가마쿠라의 다이헤이지 불전을 1563년에 이축한 가나가와현 엔카쿠지 사리전 등이 선종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이다. 헤이안시대에 지방으로 유포되었던 천태종과, 가마쿠라시대에 새롭게 지방으로 진출한 진언종을 중심으로 한 밀교계 사원에서는 절충 양식을 주로 사용하여 무로마치시대에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오사카 간신지 본당(1360년경), 효고현 가쿠린지 본당(1397)과 호마당(1563)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 시기에는 목조탑의 조영도 성행하여 일본 양식의 전통을 답습한 형태의 탑과 절충 양식의 탑, 선종 양식을 가미한 탑 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 또한 석탑도 건립되었는데, 시가현 이시도지의 삼층석탑이 가장 오래된 유구이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이 탑은 백제에서 건너온 도래인이 세웠다는 전승이 남아 있으나, 비교할 수 있는 석탑이 일본에 남아 있지 않아 제작 시기는 불분명하다. 석탑 외의 석조건축으로는 헤이안시대 말기부터 건립된 오륜탑과 가마쿠라시대 중기에 나타난 보협인탑 등이 있다. 무로마치시대에는 일본식 정원도 완성되는데, 선종 고유의 독특한 고산수정원이나 정토종의 지천회유식 정원을 개조한 것 등 다양한 형태의 정원이 현존한다. 신사 건축에도 절충 양식이 침투하여 외관의 화려한 의장을 중심으로 참신하고 복합적인 건축양식이 만들어졌다. 대표작으로는 서로 다른 형식을 조합한 오사카 다케미쿠마리신사 본전(1334) 등이 있다.
3. 공예
무로마치시대에는 요시마사가 긴카쿠지를 건립하고, 다도 등 다양한 도시 문화생활을 즐기면서 공예가 발전할 기초를 제공하였다. 무로마치 공예의 성립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은 고려와 조선 및 송과 원의 문물과 선종 사상이었다. 특히 선종은 가마쿠라시대에 처음 전래되고, 무로마치시대에 개화하여 공예의 기형과 문양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이 시대의 도자기는 세토 도기를 중심으로 하여 매병, 사이호 외에 화병, 향로 등 다양한 기형이 만들어졌으며, 흑유의 다호, 다완 등 다기 세트가 유행한다. 특히 무로마치시대에는 다도가 성행하여 금속의 유가마가 활발히 제작되었다. 대표적인 제작지로는 후쿠오카, 덴메이 등이 있다. 칠공예의 경우 헤이안시대의 복고적인 성향과 고려와 조선의 영향을 받은 모습이 나타난다. 기법적으로 마키에가 주류를 이루고 금구, 절금 등의 다양한 기법을 사용하여 정교한 문양 표현이 가능하였다. 이 시대에는 혼나메 고에쓰, 이가라시파 등 마키에 장인에 의해 제작된 작품이 남아 있다. 무로마치 후기인 1540년대에 들어서면 일본은 유럽을 통하여 아메리카의 이문화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확장한다. 그리고 1543년 다네가시마에 포르투갈인이 상륙하고, 이후 그들과의 무역을 통하여 칠기공예품(남만칠기)을 무역품으로써 수출하게 된다. 남만칠기는 성감聖龕, 상자 등의 종류로 다양하고, 특히 상자는 뚜껑과 본체로 이루어지며 흑칠 바탕에 마키에와 나전 모양이 정교하게 장식되어 있다.
[참고문헌]
이주형 외 5인 저, 동양미술사(하), 미진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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