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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학/일본미술사

동양미술사 - 일본(가마쿠라시대)

by cloudy_ 2024.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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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씨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는 지금의 가나가와현의 가마쿠라에 막부를 새롭게 열었는데, 가마쿠라 막부가 시작된 1185년부터 멸망하게 되는 1333년까지를 가마쿠라시대라고 한다.

 

 

1. 회화

헤이안시대에 이어서 가마쿠라시대에도 불화는 여전히 왕성하게 제작되었으나, 초기에는 그다지 주목할 만한 작품은 보이지 않는다. 색채는 헤이안시대 후기의 화려함보다는 수수함으로, 묘선은 유려하기보단 힘차고 강한 형태로 변화하였고, 절금截金은 헤이안시대 후기의 우아한 곡선 문양에서 직선 문양으로 변화하여 기술적인 쇠퇴를 보인다. 가마쿠라 신불교의 출현과 구불교의 재흥으로 인한 활기를 배경으로 불화에서는 전시대 말기부터 나타난 새로운 경향, 즉 활동적인 군상 표현과 현실감 있는 정경의 강조 등이 현저하게 나타났다. 특히 아미타내영도의 내용은 한층 더 풍부해지고, 구불교 측의 아미타신앙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뛰어난 화상으로 곤카이코묘지, 젠린지 등의 <산월아미타도>를 들 수 있다. 밀교 회화에서는 가마쿠라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으로 다쿠마 쇼가가 그린 1191년 도지 소장의 <십이천병풍>이 대표적이다. <십이천병풍>은 호리호리한 체구, 필세가 강한 묘선, 선명한 색조와 장식성을 감소시킨 것 등 헤이안시대와는 전혀 다른 중국 송화의 영향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가마쿠라시대의 사람들에게 밀교와 현교를 일체의 것으로 믿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이 같은 신앙기반에서 탄생한 가마쿠라시대의 특징적인 회화로는 스이자쿠가라는 것이 있다. 일본의 신들은 부처가 모습을 바꾸어 일본에 나타났다고 하는, 즉 본지수적의 사상으로 이는 헤이안시대 초기부터 존재했으나 이를 테마로 한 스이자쿠가는 가마쿠라 후반에 이르러 왕성하게 제작되었다. 스이자쿠가는 신들이나 본지불을 사전이나 사총과 함께 그린 그림으로, "슈에이 3년(1184)에 구조 가네자네(1149-1207)가 가스가어사의 그림을 예배하였다"라는 것이 기록상으로 나타나는 가장 이른 예이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미야만다라>가 있으며, <나치노타키도>와 같이 신격화된 자연 경치를 묘사한 뛰어난 작품도 있다. 가마쿠라시대 회화의 특색이 나타나는 것으로는 대상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 그리는 사실적인 초상화가 있다. <묘에상인수상좌선도>와 같이 고승의 이미지를 있는 그대로 옮겨 그린 초상화가 그 예이다. 특히나 이 시대에 주목할 만한 것은 승려나 나한을 중심으로, 귀족도 승려의 모습으로 신격화하던 이전의 초상화 방식에서 세속적인 모습을 그대로 그리는 초상화의 출현이다. 또한 가마쿠라시대는 에마키시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수의 에마키모노가 제작되었다. 채색을 주로 사용하는 쓰쿠리에 에마키 계통과 묘선 위주의 두 종류가 있으나, 순수 쓰쿠리에에 의한 작품 수는 적으며, 점차 쇠퇴해가는 경향이 현저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에마키의 주제 중 전쟁 무용담을 다룬 전기에마키로 <헤이케모노가타리에마키>가 극적인 장면을 정교하고 섬세하게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외에도 풍속과 관련된 주제의 에마키도 있었으며, 특히 선면사경의 밑그림이 풍속화로서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이 선면 밑그림은 목판에 인쇄한 후 그 위에 붓으로 채색하고 선묘로 완성한 쓰쿠리에로, 화면에는 귀족을 비롯한 서민 여아들의 생활상이 담겨 있다. 이 외에도 장병화가 있으며, 헤이안시대의 야마토에 장병화의 전통이 이어져 사계 경물화가 계속적으로 제작되었다. 진고지의 <산수병풍>은 가마쿠라시대에 처음으로 제작된 경물화이며, 헤이안시대 경물화 전통을 발전시킨 것으로 귀중한 자료이다.

 

2. 조각과 건축

가마쿠라시대에서 조형활동의 시작은 나라의 도다이지와 고후쿠지의 부흥 사업이었다. 헤이안시대 말기에는 조정과 귀족들의 주문을 독점하고 있던 인파와 엔파의 세력이 강했고, 나라불사는 사원에서 제작비를 부담한 불상을 중심으로 기용된 정도였다. 그래서 인파와 엔파가 헤이안 귀족과 헤이씨를 위한 불상을 많이 제작하였다. 그런데 1181년에 인파불사 인손이 겐씨조복을 위한 불상을 제작하여 개인 공양을 하려고 한 것이 미나모토노 요리모토의 미움을 사게 되어 미나모토노 요리모토나 막부와 관련된 사원의 불상 제작에는 주로 나라불사가 채용되었다. 그러나 고후쿠지의 경우는 여전히 궁중에서 활약하고 있던 인파와 엔파가 채용되는 일이 많았으며, 세초가 인솔하는 나라불사는 사원에서 제작비를 내는 식당 등의 불상제작에 그쳤다. 예외적으로 후지와라씨가 제작비를 낸 남원당은 인파와 엔파가 아닌 나라불사에게 맡겼는데, 나라불사 중에서도 본가 혈통이 아닌 방계인 고케에게 담당하게 하였다. 고케는 운케나 가이케로 이어지는 게파의 시조로서 가마쿠라 조각 양식의 기초를 세웠다. 여기서 게파 양식은 나라시대 조각의 전통과 사실성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융화시켜 가마쿠라 조각의 기초를 정립하였고, 고케의 제자로 여겨지는 가이케에 의해 제작된 조겐당의 목조아미타여래입상은 '안아미(가이케의 법명) 양식'이라 불리어 정토진종의 융성과 더불어 후세에까지 크게 영향을 끼쳤다. 이처럼 가이케와 운케에 의해 완성된 게파 양식은 제자들에게도 계승되었다. 가마쿠라시대의 조각은 게파의 기법과 양식이 석권한 듯한 느낌을 주지만 교토에서는 인파와 엔파가 여전히 활동하고 있었다. 이들 작품에서 보이는 우아한 상호와 사실적인 의문선은 헤이안 후기의 작풍에 가마쿠라의 사실적인 표현이 더해져서, 교토의 귀족들에게 큰 지지를 받아 14세기에 주도권을 되찾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가마쿠라시대에는 진언율종의 에이손과 그의 제자 닌쇼 등이 주창한 석가신앙으로 돌아가자는 사상의 영향으로 불교 조각에도 복고주의가 유행하여 아스카-헤이안 전기 불상의 모방작도 제작되었다. 또한 법의를 조각하지 않고 육신부만 조각한 나형 불상을 만들어 나중에 천으로 만든 의상을 입힌 작품도 제작되었는데, 가이케가 만든 효고현 조도지 목조아미타여래입상(1201)을 비롯해, 젠엔 작품인 나라 덴코지 목조지장보살입상(1228년경) 등의 작품이 현존하고 있다. 이들 불상은 가마쿠라 조각이 추구한 사실 정신의 극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사실미를 중시하는 가마쿠라시대에는 뛰어난 초상조각도 많이 제작되었다. 도다이지의 목조조겐좌상(1206년경), 미에현 신다이부쓰지의 목조조겐좌상, 사이다이지 목조고쇼보살좌상은 지금도 살아있는 듯한 사실미의 극치를 보이는 작품이다. 가마쿠라시대의 조각에는 작품 자체나 봉납품에 조상 명문이 적혀 있는 경우가 많아 제작 연대나 작가, 조성 배경 등을 알 수 있는 작품이 꽤 많은 것도 중요한 부분이다. 가마쿠라시대는 중세사원 건축양식이 완성된 시기이다. 나라시대에 대륙으로부터 유입된 것이 헤이안시대에 정형화된 일본 양식이 되고, 대불 양식과 선종 양식이 새롭게 유입되어 이 세 양식이 절충된 신일본 양식과 절충 양식도 성립되었다. 먼저 일본 양식의 건축은 시가현 이시야마데라 다보탑, 시가현 조주지 본당(12세기 말), 교토 렌게오인 본당(1266), 시가현 곤고린지 본당(1288년경) 등의 불교 사원 외에도 신사의 사전에도 사용되었다. 다음으로 대불 양식은 조겐이 중국 복건성 주변의 양식에 근거하여 송에서 건너온 진화향 등의 협력을 받아 도다이지 재건 시에 사용된 양식으로, 웅대한 구조와 독특한 장식조각은 일본 양식과는 전혀 다른 특색을 보여준다. 효고현 조도지의 정토당, 1199년에 중건된 나라 도다이지의 남대문과 개산당(1200) 등이 그 전형을 보이고 있는데, 부재의 규격화나 구조를 간소화시킨다는 특징이 너무 단순한 외관을 띠게 만들며 너무나도 혁신적인 양식이라는 이미지로 인해 조겐이 입적함과 동시에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선종 양식은 선종이 본격적으로 도입됨과 동시에 에사이 등에 의해 중국의 강남 지역(절강성, 강소성)에서 유입되었는데, 독특한 종류와 모양의 부재를 사용하여 화려하게 장식하는 방식이다. 1251~1253년 가마쿠라 겐초지가 건립되면서 대부분의 정형이 확립되어 주로 선종 사원에서 이 양식을 사용하였고, 후에는 다른 종파에서도 사용하게 되었다. 이들 선종 사원의 가람배치의 특징으로는 삼문, 중층의 불전, 법당 등의 주요 건물을 전후 일렬로, 작은 건물들을 좌우로 배열하여 전체적으로 대칭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13세기 중엽에 들어서면, 일본 양식에 대불 양식을 수용한 신일본 양식과 대불 양식과 선종 양식을 합한 절충 양식이 성립된다. 이들 양식은 정해진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일본 양식의 전통적 규범을 파괴하며 기상천회한 구조나 의장을 추구하는 등의 개성 있는 작품을 탄생시켰다.

 

3. 공예

가마쿠라시대는 무가사회를 중심으로 교토의 전통적인 귀족문화를 계승한 시대이다. 헤이안시대의 공예가 외래의 영향에서 벗어난 일본풍을 형성한 시기라면 가마쿠라시대는 일본풍의 공예가 완성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대의 도자기는 세토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세토 도기는 9세기에 제작된 사나게요의 도기를 계승한 것이다. 세토 지역에서 13세기에는 한국 및 중국 도자기를 모델로 하여 제작한 매병, 수주, 사이호 등이 주로 만들어지고, 14세기에는 중국 균요와 건요에서 주로 사용되었던 혼유와 황유에 철을 바른 이중시유기법을 응용한 흑갈유를 개발한다. 가마쿠라시대는 동과 철의 생산량이 증가하고 도다이지 대불과 고토쿠인 대불의 제조 등 금속공예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금속의 기종은 불구, 동경, 범종이 중심을 이루고, 조형적으로는 풍만하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가마쿠라시대의 칠기는 무가시대의 기풍을 반영하고 일본적인 것과 고려, 송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기형은 주로 상자가 많으며, 조형적인 긴장감을 엿볼 수 있다. 문양은 매화, 수레바퀴 등 사실적인 경향이 뚜렷하다. 특히 나전의 문양은 두꺼운 조개가 사용되거나 투조의 장식 등 다양한 기법을 보여 가마쿠라시대의 나전이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이주형 외 5인 저, 동양미술사(하), 미진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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