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말라푸람
중인도에서 굽타 왕조와 하르샤 제국이 쇠망할 무렵 남인도의 안드라와 타밀에서는 팔라바 왕조가 세력을 얻어 큰 제국을 형성하였다. 드라비다 형식의 신전이 석조 유물로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팔라바시대 초인 7세기경이다. 타밀의 첸나이(마드라스) 남쪽 해안에 위치한 마말라푸람에는 이 시기에 제작된 다수의 석조 유적이 존재한다. 마말라푸람은 나라싱하바르만 1세의 이칭인 마말라를 따서 붙인 것으로, 이곳에는 많은 석조신전과 석굴, 암벽 조각이 존재한다. 그 가운데 마말라 왕 때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5개의 석조 신전이 있다. 이 신전들은 판차 라타(5개의 신전)라는 통칭으로 불리며, 축조한 건축물이 아닌 거대한 암석을 쪼아서 만든, 즉 조각과도 같은 모습이기에 석조 신전이라 말한다. 5개의 신전 가운데 아르주나 라타와 다르마라자 라타는 드라비다 형식 신전의 초기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드라비다 형식의 신전은 나가라 형식과는 사뭇 다른 형태로, 여러 개의 수평 단이 쌓여지며 각각의 수평 단은 횡으로 늘어선 작은 누각형 건물로 구성된다. 후대의 드라비다 형식의 신전에서는 장방형의 만다파가 비마나의 앞에 놓이게 된다. 마말라푸람에는 이 밖에도 도처에 석굴과 암괴에 새긴 조각이 산재해 있다. 마히샤아수라마르디니 석굴에는 두르가 여신이 황소로 변신한 아수라(악귀) 마히샤를 공격하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 이러한 주제는 굽타시대 이래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대체로 두르가를 중심에 두고 축약적으로 표현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두르가와 마히샤의 대결을 두고 매우 서사적으로 재현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또한 매우 역동적인 움직임을 표현하면서 운동감도 화면에 부여하는데, 이런 특징은 400~500년 전 타밀의 북쪽에 위치한 안드라 지방의 아마라바티나 나가르주나콘다의 불교 조각에서도 보던 것으로 남인도에서 면면히 이어진 조각의 전통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또한 마말라푸람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는 거대한 암벽에 새겨진 부조이다. 폭 30미터, 높이 15미터에 달하는 암벽에 많은 인물과 동물들이 가득 새겨져 있다. 인물들은 앞선 시대의 아마라바티와 나가르주나콘다에서 볼 수 있는 생동감 넘치는 자세와 형태를 보여주며, 암벽의 오른쪽 하단에 새겨진 코끼리 역시 실감나고 섬세한 재현력을 보여준다.
2. 칸치푸람과 엘로라
마말라푸람의 라타들은 암괴에 새겨 만든 것이지만 8세기 초에 이르면 석재로 축조한 드라비다 형식의 신전을 볼 수 있다. 마말라푸람에서 약 40킬로미터 떨어진 칸치푸람에 세워진 카일라사나타 신전이 이에 해당한다. 카일라사나타는 시바 신을 가리키는 말로 시바가 사는 카일라사 산의 주인이라는 의미이다. 이 신전은 아르주나 라타나 다르마라자 라타가 더 확대된 모습으로 남아 있다. 신전 본당의 감들 사이에는 고푸라(gopura, 문)들이 설치되었는데, 이러한 고푸라는 완전히 자리잡힌 드라비다 형식의 중요한 요소를 이룬다. 다음으로 드라비다 형식이 잘 드러난 건조물인 중서 인도의 엘로라에 위치한 카일라사나타 신전이 있다. 엘로라에는 남쪽에 12개의 불교 석굴이, 북쪽에 5개의 자이나 석굴이 조성되어 있다. 그 사이에 17개의 힌두교 석굴이 자리 잡고 있는데, 그곳의 가장 중앙부에 있는 제16굴이 바로 카일라사나타 신전이다. 이것은 흔히 석굴이라 말하지만 석굴이라기보다 마말라푸람의 5개의 라타처럼 암괴를 쪼아서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그 규모가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석조물이다. 전형적인 드라비다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크게 강조된 고푸라를 통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름대로 이곳은 시바 신전으로 성소에는 링가가 봉안되어 있다. 그리고 기단부는 능숙하게 조각된 다양한 자세의 코끼리들이 받치고 있다. 이처럼 엘로라의 카일라사나타 신전은 이 시기 힌두교 미술의 경이로운 단면을 보여주었다.
3. 탄조르
드라비다 형식의 신전 건축의 정점은 촐라 왕조 치하에서 이루어졌다. 10세기에 팔라바 왕조를 이어 탄조르에서 나타난 촐라 왕조는 해상무역을 통하여 번영을 누렸다. 이 시대에 남인도의 고전 문화가 확립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촐라 왕조의 라자라제쉬바라 1세 때 탄조르에는 브르하데쉬바라라는 거대한 신전이 세워지기도 하였다. 브르하데쉬바라는 '위대한 주'라는 의미로 시바 신이 이칭이다. 이 신전 역시 시바 신에게 바쳐진 것이며, 명문을 통해 1003년부터 1010년까지 불과 7년 사이에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신전의 만다파는 평평한 지붕으로 되어 있고 비교적 간소하게 축조되었다. 여기에 이어지는 비마나는 상부구조가 14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높이가 60미터를 넘어갔기에 당시 남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고 전해진다. 비마나의 외벽에는 열주 사이에 조각들이 배치되어 있다. 남면 벽에는 두 종류의 춤추는 시바 상이 새겨져 있다. 이와 더불어 촐라시대에는 매우 훌륭한 금속상들이 만들어졌다. 당시의 주조 기술이 뛰어났으며 인물의 형태와 동세 표현 역시 탁월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촐라시대의 청동상으로 유명한 <춤추는 시바>는 날씬하고 탄력 있는 몸매와 유연한 움직임이 돋보여 조형적으로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한쪽 발을 사뿐히 든 모습에는 시바가 몰두하고 있는 춤사위가 잘 드러나 있다. 이러한 상징성과 조형성을 통해 <춤추는 시바>는 이후의 힌두교 신상 가운데 가장 전범적인 형상이 되었다. 현재에 와서도 인도에서 가장 널리 복제되어 팔리는 힌두교 신상이며, 힌두교 신상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이미지가 된 것이다. 촐라는 스리랑카와 데칸까지 진출하며 영토를 확장하고 큰 번영을 누렸지만 판디야 왕조에 의해 1279년에 멸망한다. 이 무렵에는 북인도와 중인도가 거의 무슬림들에게 장악되었으며, 이들의 세력은 16세기에 남인도까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무슬림은 끝내 타밀까지는 내려오지 못했고, 이 덕분에 타밀에서는 힌두교 전통이 단절 없이 지속될 수 있었다. 그러나 촐라시대에 볼 수 있었던 수준과 창의성을 갖춘 신전 건축은 그 뒤에 다시 발전하지 못했다.
[참고문헌]
이주형 외 5인 저, 동양미술사(하), 미진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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